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대 이집트 (문단 편집) == 사회 == 이집트 사회는 굉장히 계층적이고 수직적인 사회였다. 인구의 절대다수가 밭을 경작하는 [[농부]]들이었으나 이들을 지배하는 이들은 극소수의 [[귀족]]과 [[신관]] 계급이었다. 대부분의 농부들은 신전이나 귀족 대가문들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생산량이 높은 토지는 거의 지배층의 소유였다. 농부들은 생산량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바치는 동시에 나라나 신전에서 하는 개수 공사나 운하 공사에 강제적으로 참여해야만 했다. 그나마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나 [[장인]], [[예술가]] 등은 농부보다 처지가 나았다. 그러나 이들 역시 국가나 귀족, 신전에 예속된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그들이 시키는 대로 작품들을 만들거나 이들을 찬양하는 내용의 물건들을 생산하는 일을 맡았다. 이들을 중간에서 관리하고 직접적으로 지휘하는 중간 계급, 예를 들어 서기나 실무 관리들은 '백색 킬트 계급'이라고 불렸다. 이들이 멀리서도 눈에 잘 띄는 맑은 하얀색의 킬트로 만든 천을 두르고 다녔기 때문. 매일같이 흙먼지 속에서 뒹구는 [[평민]]이나 농부들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옷차림이었고, 고대 이집트에서는 옷의 청결도나 재질만 보아도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계급을 판단할 수 있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ociety_pyramid.jpg]]}}} || || '''고대 이집트의 계급도''' || 이 관리들 위에서, 그리고 이집트 사회 꼭대기에는 귀족과 [[사제]] 계급을 포함한 지도층이 있었다. [[정교분리]]가 확실치 않았던 이집트에서는 파라오 본인이 아문의 대신관 직을 맡거나 귀족들이 사제들과 [[결혼]], 아니면 아예 신관직을 차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사실상 동일한 계급이라고 본다. 이들은 평생 육체 노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고,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은 채로 막대한 부를 누렸다. 이렇게 불평등한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대 이집트에서 사회 반란이나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당시 이집트가 엄청나게 종교적인 사회였기 때문이었다. 신관들은 평민들에게 참고 견디면 내세에서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달콤한 말로 꼬셨고, 평민들은 이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워낙에 사후 세계와 종교, 그리고 신에 대한 신앙이 강렬했던 이집트 사회였기에 신관들의 가르침은 더더욱 효과가 강력했다. 이집트의 사회의 정점에는 [[호루스]]의 현신이자 인세에 강림한 현인신인 [[파라오]]가 있었다. 파라오는 말 그대로 살아 숨쉬는 신과 비슷한 대접을 받았고, 왕의 권위는 기타 문화권과 비교해도 압도적이었다. 이집트 사회에서는 의외로 [[성평등|남성과 여성의 권리가 동등]]했다. 뿐만 아니라 파라오를 제외하면 귀족이나 평민, [[노예]]들도 선천적으로는 평등한 관계라고 여겼는데, 덕분에 노예 출신이지만 출세에 출세를 거듭해 재상직에 오르는 경우도 있었고 아니면 역으로 대귀족 출신이었지만 바로 노예 계급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노예들은 물론 사유 재산으로 취급당했고 그 대우도 혹독한 편이었지만,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모아 주인으로부터 자유를 사들일 수도 있었고 [[의사]]에게 정식으로 치료받을 권리도 인정받았다. 남녀의 경우에는 거의 비슷하다고 보아도 될 정도로 그 대우가 공평했는데, 타 문명권들과는 다르게 여자에게도 [[계약]]을 체결할 권리, 재산을 사고팔 권리, 결혼하거나 [[이혼]]할 권리, 상속받을 권리, [[소송]]을 걸 권리 등이 인정되었다.[* 현대에야 당연해 보이지만 고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장 《[[성경]]》만 보아도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성의 권리가 남성에 비해 크게 제약되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결혼한 이후에도 아내에게 독자적인 재산을 따로 축적하는 것이 인정되었으며, 남편들에게는 부인과 제 자식을 부양할 의무가 분명히 존재했다. 동시대 그리스나 메소포타미아, 심지어는 몇천 년 후의 [[로마 시대]]의 여성 인권보다도 크게 진보한 부분이 있었던 것. [[하트셉수트]]나 [[클레오파트라]] 같은 여성 파라오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여성에게 개방적이었던 고대 이집트 사회의 분위기 덕분에 가능했다. 이집트인들은 외모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거의 매일같이 [[나일 강]]에서 목욕하며 때와 땀 등을 닦아냈다. 이집트에서는 동물 지방과 나무를 태운 재로 만든 세계 최초의 [[비누]]도 등장했다. 남성들은 청결을 위해 머리털, [[음모(신체)|음모]] 등을 포함해 온 몸에 나 있는 체모를 깨끗하게 밀어 버렸고, 피부에 향유를 바르거나 [[향수]]를 뿌리기도 했다. 평민들의 경우 하얀 천으로 만든 단순하게 생긴 킬트나 로인클로스를 걸치고 다녔고, 귀족이나 돈 많은 [[상인]] 계급은 값비싼 염색 천으로 만든 옷을 두르고 [[보석]]으로 몸을 장식했다. [[어린이]]들은 성년에 이르기 전까지는 옷을 아예 입지 않고 돌아다녔고, 특히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머리 일부분에 머리카락을 남겨 놓고 싹 밀어 버린 후 이 남아 있는 부분의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 꽁지머리처럼 땋았다. 성년이 되어서야 이 꽁지머리를 잘라 버리고 완전한 성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 상대적으로 [[기대 수명]]이 짧았던 이집트에서는 보통 12세를 넘어가면 성인으로 봤다. [[음악]]도 굉장히 즐겼는데, [[하프]]나 [[플루트]] 같은 초기적 형태의 악기들이 등장하면서 인기를 많이 끌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오보에]], [[트럼펫]], 파이프와 비슷하게 생긴 악기들도 나타났고, 아시아에서는 [[심벌즈]], [[드럼]], [[탬버린]], 종 같은 타악기들도 들여 왔다. [[류트(악기)|류트]]와 [[리라]]도 이집트 후기 들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여가 생활에 음악 외에도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현대에도 그나마 잘 알려진 게임으로는 [[세네트]] 등이 있고, 그 외에도 메헨이나 '[[개]]와 [[자칼]]'이라는 [[보드 게임]]들도 있었다. 보드 게임은 평민이나 귀족, 왕족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즐기는 여가 생활이었는데, 일례로 제13왕조 시기의 파라오 아메넴헤트 4세의 무덤, 그리고 테베의 평민들의 무덤에서 동시에 세네트 보드 게임판이 발견된 바 있다. 아이들은 머리를 쓰는 보드 게임보다는 공놀이나 [[저글링]] 등 즉흥적인 게임을 더 좋아했고, 가끔씩은 [[레슬링]]을 벌이기도 했다.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의 경우 돈이 많이 드는 [[사냥]]이나 [[낚시]], 아니면 배 타기 등의 유흥을 즐겼다. 물론 이 정도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가능했지 일반 평민들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